한국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원화 가치가 연동돼왔다. 한국 외환시장이 자율변동환율제도 하에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원화 가치는 세계 최종수요에서 한국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등락했다.
지역화 트렌드 속에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이 소비자로의 역할 변모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을 대신할 주요 생산 거점으로 ASEAN(베트남)과 인도 등의 역할이 확대돼 한국의 교역 점유율 확대는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대신 국내의 경우 기술집약적인 제조업 생산에 집중하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지역 거점에 대한 직접투자도 선제적으로 집행했다. 지역화 흐름 하에서도 세계 부가가치 기여 비중은 유지될 가능성이 우세하다.
그런데 2013~2014년 이후 한국의 부가가치 비중과 원화 가치 간 탈동조화 흐름이 전개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2018년 부가가치 비중은 2006~2007년 수준인 2% 내외로 늘어난 반면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당시의 90% 수준에 그친다. 이는 한국 제조업 공동화 현상 때문이다. G2 분쟁과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조업의 국내투자 대비 해외투자 비율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9년 기준 10%를 상회했고 새로운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제조업 공동화는 지속될 공산이 크다.
과거 수출 호조는 제조업 생산 증가와 가동률 상승,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로 이어져 한국 펀더멘탈에 직접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들어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면서 수출과 내수 간 선순환 연결고리는 약화됐다. 한국 기업의 해외 생산이 확대될수록 기업과 국가 간 펀더멘탈 괴리는 심화된다.
달러화 수급의 측면에서도 가공, 중계무역을 포함하는 상품수지는 실제 한국으로의 달러화 순공급을 과대 계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2년부터 국제수지 기준의 상품수출과 통과기준 수출 간 확연한 차이가 난다. 가공무역은 국내 기업이 해외 가공업체에 원재료 및 반재료 등을 제공하고 직접 제3국의 고객에게 수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의 수출이 국제수지 기준에는 포함된다.
중계무역은 거주자가 해외에서 상품을 구입해 자국으로 반입하지 않고 원상태 그대로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무통관거래를 의미한다. 모든 생산과 판매가 해외에서 이뤄져 한국 국경 내 직접적 경제활동과 무관하나 상품수지로 계상된다. 중계무역순수출은 2011년 51억달러에서 2021년 221억달러로 10년 만에 4배 증가해 전체 경상수지의 25%를 차지한다. 한국 국제수지 및 GDP의 과대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 기조는 한국경제 펀더멘탈을 약화시키고 원화 가치와 연동되는 상품수지의 과대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평균적인 원/달러 환율 레벨은 이러한 배경 하에 다소 상향된 것으로 봐야한다. 1,050~1,250원의 박스권에서 1,100~1,300원으로 박스권이 상향됐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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